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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서쪽 끝에서, 바다가 말을 걸다

유럽의 지도에서 맨 서쪽 끝을 바라보면, 대서양과 맞닿은 도시 하나가 보인다.
그곳이 바로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Lisboa).


테주강이 대서양으로 흘러 들어가는 지점,
금빛 햇살이 강물 위에서 반짝이는 도시.

리스본은 단지 수도가 아니다.


대항해 시대를 열었던 항구,
지진에서 부활한 도시,
슬픔을 노래로 만든 문화의 도시다.


이곳의 이름과 역사는 바다의 냄새를 품고 있고,
언덕 위의 하얀 집들은 그 긴 시간을 기억하고 있다.


1. 리스본 이름의 기원 — 바다의 언어에서 태어난 이름

리스본의 이름에는 수천 년의 바람이 스며 있다.
그 뿌리는 기원전 고대 지중해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 페니키아 상인들이 붙인 이름, Alis Ubo

기원전 1200년경, 지중해를 넘나들던 페니키아 상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의 서쪽 끝에서 항구를 발견했다.


그들은 이곳을 “Alis Ubo”라 불렀다.
그 뜻은 ‘안전한 항구(Safe Harbor)’.

 

테주강의 완만한 하구는 거친 대서양으로 나아가기 전
배를 숨길 수 있는 완벽한 피난처였다.
이 지명이 세월을 따라 라틴어로 변형되며 **Olisipo(올리시포)**가 되었다.


2) 그리스 신화 속 이름 — 울리세스의 도시(Ulyssipona)

고대 로마의 역사서에는 흥미로운 전설이 남아 있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울리세스(Ulysses)**가 귀향길에 폭풍을 만나
이 지역에 머물며 도시를 세웠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올리시포는 울리세스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리스의 영웅이 세운 도시라는 전설은
리스본 사람들에게 “우리는 바다의 영웅의 후손이다”라는 자부심을 남겼다.


지금도 리스본 항구 근처에는
‘울리세스의 탑(Torre de Ulisses)’이라 불리는 지역이 남아 있다.


3) 무어인의 시대, 알우스부나(Al-Usbuna)

8세기부터 12세기까지, 이베리아 반도는 이슬람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무어인들은 이 도시를 Al-Usbuna라 부르며 요새화했다.


이 이름은 아랍어 발음 특유의 유연함을 지니고 있으며,
오늘날 리스본의 발음 ‘Lishbõa’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즉, 리스본은 하나의 이름이 아니라,
세 개의 문명 — 페니키아, 로마, 아랍 — 이 겹쳐진 언어의 유적이다.


2. 로마 시대의 리스본 — 루시타니아의 진주

기원전 205년, 로마 제국이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면서
올리시포는 ‘루시타니아 속주(Lusitania)’의 중심 도시로 성장했다.


현재 포르투갈인들이 자신들을 ‘루시타노(Lusitano)’라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서 나온다.

로마 시대의 리스본은 이미
극장, 목욕탕, 수도교, 그리고 포럼이 존재하던 완전한 도시 국가형 항구였다.


당시 유적 중 일부는 지금도 리스본 구시가지의 골목 밑,
‘로마 극장(Teatro Romano)’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리스본은 단순한 무역항이 아니라
서쪽 끝에서 로마의 문명을 전파한 서방의 거점이었다.


3. 이슬람의 도시, 알우스부나 — 흰 벽과 미로의 탄생

711년, 북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무어인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했다.


그들은 리스본을 **“알우스부나(Al-Usbuna)”**라 부르며
성벽으로 둘러싼 요새 도시로 만들었다.

 

오늘날 리스본의 가장 오래된 구역 **알파마(Alfama)**는
바로 그 무어인의 도시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좁은 골목, 구불구불한 계단, 하얀 석회 벽,
그 위를 덮는 푸른 타일(아줄레주).

무어인들은 언덕 위에 **상조르주 성(Castelo de São Jorge)**을 세워
도시 전체를 내려다보게 했다.
그 성채에서 본 리스본의 전경은 지금도 숨이 막힐 만큼 아름답다.


4. 리스본의 재정복 — 포르투갈 왕국의 시작

1147년, 기독교 세력이 이슬람으로부터 리스본을 탈환한다.
포르투갈 초대 왕 **아폰수 엔히크(Afonso Henriques)**는
이 승리를 포르투갈 왕국의 건국 신호탄으로 삼았다.

 

이후 리스본은 빠르게 성장하며
1255년 공식적으로 포르투갈의 수도로 지정된다.


항구도시로서의 입지와 강력한 해양 네트워크는
리스본을 곧 유럽의 ‘서쪽 관문’으로 만들었다.


5. 대항해시대의 수도 — 세계로 향한 문이 열리다

15세기 말, 리스본의 항구는 인류의 역사를 바꿔놓았다.

 

1) 헨리 항해왕자와 항로 개척

포르투갈의 왕자 **앙리(헨리 항해왕자)**는
아프리카 서해안을 따라 항해하며
새로운 무역로를 찾았다.
그가 세운 항해학교는
지도 제작, 천문항법, 조선술의 중심이 되어
유럽 전체의 해양 기술을 발전시켰다.

 

2) 바스쿠 다 가마의 출항

1497년, **바스쿠 다 가마(Vasco da Gama)**는
리스본에서 출항해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달했다.
그의 항로 개척으로 리스본은
향신료 무역 제국의 심장이 되었다.

당시 세계의 모든 부가 리스본으로 들어왔다.
인도와 아프리카, 브라질, 일본에서 온 금, 후추, 비단, 도자기, 향료가
이 도시의 창고와 시장을 가득 채웠다.


6. 벨렝 지구 — 항해의 기억이 머무는 곳

테주강 하구의 서쪽 끝, **벨렝(Belem)**은
리스본의 황금시대를 상징하는 지역이다.

  • 벨렝 탑(Torre de Belém):
    1515년 완성된 리스본의 상징적 건축물.
    강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이 탑은,
    출항하는 항해자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수문장이었다.
  • 제로니무스 수도원(Mosteiro dos Jerónimos):
    포르투갈식 고딕, 즉 ‘마누엘 양식’의 정점.
    거대한 돌기둥과 정교한 아치, 해양 문양의 장식이 특징이다.
    198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발견자 기념비(Padrão dos Descobrimentos):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33명의 항해자 조각상.
    맨 앞에 선 인물은 바로 항해왕자 앙리.
    ‘세계를 향한 첫걸음’의 순간을 돌로 새겼다.

이 벨렝의 강변은 지금도 포르투갈 국민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장소다.


7. 1755년 리스본 대지진 — 도시가 무너진 날

1755년 11월 1일, ‘만성절(All Saints’ Day)’ 미사가 한창이던 아침,
리스본을 강타한 대지진은
유럽을 충격에 빠뜨렸다.

 

규모 8.5~9.0의 초대형 지진,
곧이어 밀려온 쓰나미와 화재로
도시는 거의 전멸했다.


80,000명 이상이 사망했고, 리스본의 영광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나 이 재난은 도시 계획의 혁신으로 이어졌다.


1) 폼발 후작, 근대 도시를 설계하다

재건을 지휘한 인물은 세바스티앙 조제 드 카르발류,
즉 **폼발 후작(Marques de Pombal)**이었다.

 

그는 “죽은 자들을 묻고, 산 자들을 도시로 이끌라”고 말했다.
그는 리스본 시내를
격자형 거리, 내진 건물, 넓은 광장으로 재구성했다.
이때 만들어진 ‘바이샤 지구(Baixa Pombalina)’는
현대 도시계획의 선구적 모델로 평가받는다.

오늘날 리스본 중심의 **상타 주스타 엘리베이터(Elevador de Santa Justa)**에서 내려다보면,
그 깔끔한 도시 격자가 한눈에 들어온다.


8. 근대의 리스본 — 혁명과 부활의 도시

19세기 후반, 리스본은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변모했다.
트램이 도입되고, 철도가 연결되며, 유럽의 다른 수도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포르투갈은 독재 정권 아래 놓인다.


무려 40년간 지속된 살라자르 체제는 리스본을 침묵시켰다.

그리고 1974년, 봄날의 혁명이 일어난다.

1) 카네이션 혁명

군인들이 총구에 카네이션 꽃을 꽂고 거리로 나왔다.
총성이 울리지 않았고, 시민들은 노래하며 독재를 끝냈다.
그날 이후 포르투갈은 민주주의로 돌아왔고,
리스본은 자유의 도시로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9. 리스본의 언덕 — 7개의 시선으로 본 도시

리스본은 일곱 개의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다.
그래서 골목마다 풍경이 달라지고,
어느 방향으로 걷든 하늘과 강이 보인다.

1) 알파마(Alfama)

무어인의 흔적이 남은 가장 오래된 지역.
좁은 골목 사이로 파두가 흘러나오고,
창문마다 하얀 커튼이 바람에 흔들린다.

2) 바이루 알투(Bairro Alto)

밤이 되면 음악과 와인의 도시로 변한다.
이곳의 펍에서는 현지인들이 파두를 부르고,
낯선 여행자들도 금세 친구가 된다.

3) 시아두(Chiado)

문학과 예술의 거리.
카페 ‘아 브라질레이라(A Brasileira)’에는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의 동상이 앉아 있다.
그는 “모든 길은 리스본으로 흘러든다”고 썼다.


10. 리스본의 예술 — 타일, 음악, 그리고 빛

1) 아줄레주(Azulejo)

리스본의 건물 외벽을 덮은 파란 타일, 아줄레주
무어인들의 장식 예술에서 시작되었다.
태양빛 아래 반사되는 그 푸른빛은
도시 전체를 ‘빛의 캔버스’로 만든다.

 

아줄레주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역사·종교·항해의 장면을 담은 이야기 그림이다.
국립 아줄레주 박물관에는 16세기 왕궁 벽화부터
현대 추상 타일까지 70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2) 파두(Fado) — 리스본의 영혼

파두는 리스본의 밤을 지배하는 음악이다.


기타 12줄의 리스보아 기타와
가수의 슬픈 음성이 어우러져
사라진 사랑, 그리움, 바다로 떠난 사람들을 노래한다.

 

‘사우다지(Saudade)’라는 단어는 파두의 정수다.


직역할 수 없는 감정 —
그리움, 쓸쓸함,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체념.
리스본의 골목 어디서나 이 노래가 흘러나온다.


11. 유네스코 유산으로서의 리스본

리스본은 단지 아름다운 도시가 아니라,
**세계문화유산의 보고(寶庫)**다.

  • 벨렝 탑과 제로니무스 수도원 (1983)
  • 파두(Fado) 음악 (2011)
  • 아줄레주 예술 (2023, 등재 추진 중)

이 유산들은 각각
‘항해’, ‘감성’, ‘예술’이라는 키워드로
리스본의 정체성을 설명한다.


12. 오늘의 리스본 — 전통과 미래의 교차점

21세기의 리스본은
옛 골목 위에 새로운 기술과 창의력이 쌓이는 도시다.


스타트업 허브 ‘LX Factory’, 예술 공간 ‘MAAT’ 같은 곳에서는
디지털 산업과 예술이 공존한다.

 

도시 재생이 활발한 알칸타라(Alcântara) 지역은

한때 공장이던 공간이 카페·서점·갤러리로 변신했다.


이곳에서 옛 리스본의 정취와 현대의 활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결론: 리스본, 끝이 아니라 시작

리스본의 이름은 ‘안전한 항구’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 도시는 결코 정박하지 않았다.


늘 떠나고, 늘 돌아오는 항구,
그것이 리스본의 본질이다.

 

페니키아의 상인들이 남긴 이름,
로마의 도로, 무어인의 성벽, 왕의 궁전, 혁명의 꽃,
그리고 오늘의 자유로운 바람까지 —
모든 시대가 리스본 안에 층층이 쌓여 있다.

 

그래서 리스본을 걷는다는 건
시간의 골목을 따라 걷는 일이다.


하얀 벽에 부딪히는 햇살,
바다로 향하는 바람,
그리고 골목 끝에서 들려오는 파두 한 구절.

 

“Saudade — 그리움이여, 나는 여전히 너의 도시 안에 있네.”


참고문헌

  1.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Monastery of the Hieronymites and Tower of Belém in Lisbon, 1983.
  2. José Hermano Saraiva, A História de Portugal, Lisboa: Verbo, 2010.
  3. Miguel Sousa Tavares, Lisboa – Cidade da Luz, Porto Editora,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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